어느 자비량 선교사의 외롭고 힘든 회복선교 길 -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이해왕선교사 작성일18-09-01 08:02 조회37,42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 이글은 2004년 7월 10일에 제가 Daum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입니다.
한국사회도 거의 같겠지만, 미국 근로자들 중에 80%가 사업체나 직장에서 일을 하며, 15%는 정부 일을, 그리고 5%가 교회나 비영리단체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오늘도 생업은 식품점 종업원 겸 주인인 금년 62세의 한 늙은이가 손님을 받으면서, 바삐 컴퓨터 키보드를 치다가 손님이 와도 좀처럼 스크린에서 눈을 띨 줄 몰라 하다가, 어떤 손님은 “너는 왜 웃으며 반갑게 손님을 맞지 않느냐”는 말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장님, 선교사님, 목사님, 전도사님 ...등등 여러 가지 호칭을 듣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자영비지니스를 하니 그냥 사장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고, 선교업무를 하니 선교사요, 회복모임에 참석해서 정말 감동받은 사람들은 천명이상 교인이 있는 교회 담임목사님보다 더 힘들고 귀한 일을 한다며 목사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왠지 국내 선교가 이상한지 교회목사님들은 전도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하루에 1~2번 상담 전화를 받으면, 못처럼 수치심을 무릅쓰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전화를 걸어온 내담자에게 중독회복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것처럼 신뢰심을 주기 위해서 가게손님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까지 30~40분간 하소연을 들어주며 열심히 중독증 회복에 관한 설명에 열을 올린다.
때로는 전화번호부에 나오는 주소만 보고 아주 번듯한 건물에서 회복선교를 하는 줄 알고, 어떤 곳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연락도 없이 찾아왔다가는 실망부터 하는 바람에, 정작 회복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물어보지도 못한 체 돌아가는 사례도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1. 자비량 선교사의 길 (Tentmaking Missionary)
대개 교인 60명 당 1명 꼴로 선교사를 파송해 왔고, 선교사를 순회선교(Itinerary), 이주선교(Diaspora), 자비량선교(Tentmaking)로 구분한다.
요즘은 선교사 파송 후원경비가 과거보다 많이 들고, 자녀들의 교육 등도 문제가 되면서 자비량선교에 대한 관심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현실이다. 교회들도 점차 단기선교에 비중을 두고, 선교지에서는 오히려 생업을 가진 자비량 선교사의 역할이 증가되고 있다.
자비량선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근대선교의 아버지인 William Carey를 꼽을 수 있다.
그는 1793년에 인도에 도착해서...
“내 일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일이고, 나는 구두를 만들어 팔아서 선교경비를 조달한다!
(My business is to witness for Christ. I make shoes to pay my expenses)”고 했다.
자비량 선교의 성경적 문구는 바울사도가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했던 사도행전 20장 33-35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그래서 생업으로 생활을 하며, 회복선교를 지원하고, 회복참여자들에게 회복과 함께 예수님 사랑을 전하는 일도 바울사도의 자비량선교 방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2. 회복선교를 하게 만든 아내의 병고
1995년 5월 9일 아내가 골프를 치고 와서 학질과 같은 열병을 앓기 시작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종업원 2명을 두고 작은 식품점 마켓을 쾌 오랫동안 운영을 해 와서 부자는 아니지만 살기에는 별로 지장이 없을 정도로 안정되었다.
처음에는 감기 몸살 정도로만 알았던 열병은 의사들을 잘못만나서, 또는 약을 잘못 써서인지 문제는 점점 더 커져만 가서, 의사와 주위 사람들은 병원입원 2주 만에 죽을 것 같다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정부종합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서, 그곳에 2달 반을 입원해 있으면서 여러 검사에도 불구하고 열병은 계속 악화되었고 병명은 알 길이 없었다.
우환에 효자나 장사 없다는 말처럼, 아내 병 수발 3개월을 하고 나니, 그만 심신이 다 지쳐 있었고, 병원비는 매일 5천불이 넘어서 그간 병원비만도 무려 36만 불 정도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집안이 몇 달 동안 엉망이 되다보니 자식까지 속을 썩여서, 하던 사업은 급속히 기울기 시작하여, 이때 처음으로 50평생 동안 일해서 모은 재산이 다 없어지는 상황에 처해서, 억지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실감을 하게 되었고, 처절히 낮아져서 세상적인 꿈이 다 깨어져버린 기분이었다.
병원에 입원하지 3개월이 되던 95년 8월 20일 일요일 오전에 정말 괴이한 일이 생겼다. 당시 하도 한인 교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이런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고 악담을 하듯이 겁을 주며 병원전도를 하는 분들 때문에, 교회도 다니지 않으면서, 모 교회에 출석한다는 메모를 아예 아내의 병상에 붙여 놓곤 했다.
그런데 그날 병원 복도에서 미국인 남녀가 부르는 찬송소리를 병실에서 듣고 복도에 나가고 싶다고 해서, 서울서 병간호차 온 여동생이 아내를 안아서 복도의자에 앉혀놓았더니 눈물콧물을 흘리며 그분들의 기도를 받고, 그날 이후부터 열병이 가라앉아서, 2주일동안 일어나 걸으며 혼자 화장실 보는 연습을 하다가 9월 6일에 퇴원했다.
그 후 아내는 바로 교회에 나갔고, 나는 혼자서 가게를 하면서 95년 8월 31일부터 매일 성경 3~4페이지를 탐독하기 시작 했다. 처음에는 신약을, 그 다음은 구약을 읽었는데, 또다시 신약이 가물가물하여 다시 신약을 읽어서 성경 2,177 페이지를 읽는데 무려 2년이나 걸렸다.
97년 1월부터는 송광률 목사님이 단임 하는 선한청지기 교회에 출석을 했고, 그해 6월 29일에는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사역하는 박상목 목사님의 삭개오 중심 초청 예배설교시간에 흰 불빛 체험을 했으며, 98년 4월 5일에 세례를 받았다.
3. 통신신학 공부와의 인연
성경을 다 읽어갈 무렵에, 미주복음방송에서 비디오 성서통신강좌 안내 방송이 정말 갑자기 확성기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처럼 귀에 크게 들려서 그날 바로 박인순 목사님에게 연락을 드려 등록을 하고, 1997년 7월 18일부터 9월 17일까지 2달 만에 연구과 100개 테이프와 본과 100개, 도합 200개 테이프를 열심히 보며 얼마나 뜨겁게 감명을 받았던지, 바로 나성비디오 성서통신대학 분교사역을 시작해서, 30 여분에게 당시 $700 이나 되는 유료 통신신학과정으로 입학을 안내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도는 무엇인가 생활과 연관된 분야를 도우면서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되어, 98년 1월부터 도박가족회복모임에 매주 참여하면서, 그때부터 중독 전문서적들을 통해서 도박중독 회복이론들을 접하며, 도움이 될 자료들은 복사해서, 모임진행 책임자의 양해 하에 10여 분간 중독회복 자료들을 발표를 하곤 했다.
`1998년 5월 2일에 성서통신과정 졸업식에서 수료증과 함께 이제부터 당신은 선교사라는 작은 쪽지 한 장을 받았지만,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랐다. 5월 말경에 1년 이상 참여해온 도박자 가족모임에서, 후원자로 계셨던 배 장로님의 배려로 15분간 회복자료를 도박가족들에게 설명했다가, 한 도박자의 아내로부터 호된 질타를 받게 되었다.
“당신이 갑자기 어떻게 선교사가 되었으며, 도박중독증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이따위 자료를 갖고 아는 척 하느냐?”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렵게 생업에 종사하며 신학통신강좌를 공부하고 이제 막 졸업을 했는데, 당신이 무슨 선교사냐고 따지는 데는 할 말을 잃었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배 장로님께서는 거듭 미안하게 되었다고 하시며 위로를 해 주셨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이 모임에 그만 나오고, 다른 곳에 가서 더 뜻있는 일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 모임 참석을 그만두고 나서, 도박 회복에 대해서 더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미국인 단도박 회복모임에 참석하며, 98년 6월 12일에는 CNS 한인 기독교 방송에서 간증을 하기도 했다. 10월 13일부터 3개월간 한국 단도박을 창설하신 미국인 백 신부님의 성당에서 운영하는 LA 한인 타운에 있는 한인 단도박 모임에 도박자로 가장해서 참석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한인 단도박과 도박가족 모임, 미국인 도박모임, 알코올 모임, 음식중독자 모임, 그리고 미국인 성 중독자회복모임까지 두루 참석해 보면서 중독의 이해와 회복치유에 대한 견문을 넓혀갔다. 1998년 11월에 우연히 미국기관에서 실시하는 도박 상담자 교육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서, 도박중독 전문가들을 기도실로 초청해서 백신부님을 포함한 미국인들 5분과 한인 3명이 함께 매주 토요일마다 교육을 받았다.
4. 신앙적 체험
성경에서도 주님이 이적을 베푸시곤 반듯이 사람들에게 가서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 흰빛 영상체험 - 1997년 6월 27일 주일날 예배에서....
박상목 목사님의 “삭개오 중심(누가복음 19장 1-10절)” 초청 설교 시에 흰빛 영상체험을 했다. 박목사님이 강단에서 설교하는 45분 동안 계속 뒷면에 마치 박목사님의 그림자와 같은 흰빛 영상이 보이기 시작 했다.
박 목사님이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고생을 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 흰빛 영상이 마구 일그러지어, 마치 위에서 누가 사람을 잡아끌어 올리는 듯한 형상이었으며, 오히려 성경 문구를 봉독하거나 인용하는 말씀을 전할 때에는 그냥 잔잔한 형상으로 되었다.
* 게시판 제목 “어느 자비량 선교사의 외롭고 힘든 회복선교 길 - 2”를 보시면~
그다음 내용의 글을 보실 수 있으십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